지난 7월 초, 1학년 첫째를 하교 시키러 교문에 들어섰는데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불쑥 말씀을 건네신다.
'주안이가 한 2주 전부터 눈을 자꾸 깜빡여요. 눈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안과에 한번 가 보시는게 좋겠어요'
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고 보니 눈을 아이가 몇번씩 계속 깜빡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안구건조증이려나. 안약을 넣어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불편하다니 일단 안과로 향했다. 이것저것 검사를 다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고 내가 야단이라도 치거나 쑥스러운 상황, 불편한 상황에 더욱 더 심하게 눈을 깜빡였다.
눈이 참 예쁜 아이인데, 눈을 심하게 깜빡 깜빡 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 눈 깜빡이지 말라고 몇 번 이야기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당연히.
거기에 금새 머리 흔드는 증상까지 발현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머리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좌우로 흔들어댔다.
설마 설마 했지만 이건 내게 드는 생각이 맞는것 같았다. 유튜브와 네이버를 마구 뒤지며 찾아낸 정보.
틱 장애. 뚜렛 증후군으로도 불리는 그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오래 집중하는것을 힘들어했고
학교에서 장난을 잘 친다는 이유로 나에게 자주 혼이 났던 시기였다.
동생이 3명이나 되는 주안이, 자기 나름대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8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모든 환경이 바뀌고 잠깐 적응한 어린이집을 그새 졸업하고 '학교'라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했던 아이.
11월 생이라 가뜩이나 생일 빠른 또래에 비해서 어리고 키도 작은데, 여린 마음을 지니고 내성적인 성격이기까지 한 아이.
특별히 맏형이라는 이유로 아직 아가아가 한 1학년임에도 많은 책임감들을 알게 모르게 지워줬던 내 자신의 행동들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셋째 주영이에 대한 질투가 컸다는걸 알지만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었다. 낮잠을 자야하는 어린 동생때문에 포기해야했던 바깥활동과 같은 많은 제약들이 주안이에게 있었다.
포기해야할것들이 많았을 거다. 어린 동생 위주로 잡히는 계획과 활동들.
엄마를 오롯이 차지할 시간도, 오롯이 자기가 원하는 일정을 잡을수도 없었으니 참
많은 것들이 어려웠겠구나. 엄마가 많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틱 증상인것 같다고 신랑에게 얘기하고 며칠간은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지냈었다
그러다 어느날 밤 불현듯이..
틱 증상에 대한 정보수집이 충분히 완료되서인지,
내 마음에 갑자기 너무나 큰 무게와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날도 한없이 눈을 깜빡이고 머리를 흔들던 아이는 곤히 잠이 들었고
나는 아이의 방으로 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잡고 글을 쓰며 울었다. 아이 방문에 붙일 초대장이었다.
'이주안, 잘 잤는가? ^^ 베란다에 나가보면 화분이 있을거야. 화분에서 편지를 꺼내보도록 해라.'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의 몇단계 탐험 미션편지를 준비했다.
아이가 평소에 가고싶다고 하던 아쿠아리움 초대장을 재미있게 찾을수 있게끔 유머스럽게, 그러나 정작 나는 한없이 울면서 만들었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몇번이고 쓰다듬으며 울고 또 운 밤이다.
이렇게 예쁜데..뭐가 그리 힘들었니
몰라주고 야단만 쳤던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말그대로 모든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항상 물었었다.
"엄마 시간 있어요?"
아니 없어, 엄마 녹음해야 돼. 악보 작업 해야 돼..하던 날들...
그럼 언제 시간 돼요?
그게 그렇게 큰 울림으로 내게 다시 들려왔다.
모든걸 내려놓고 아이만 봐야겠단 맘이 들었다.
정말이지 나는 육아하면서 힘들어도 아이때문에 운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 울어봤다.
다음날 미션편지를 읽고 초대장을 발견한 아이는 행복해했고 그날 바로 아쿠아리움에 함께 갔다.
어느때보다 머리를 강하게 흔들고 눈을 수시로 깜빡이는 모습을 보며
이전의 아이 모습이 너무나 그리웠다.
예전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났다.
아이가 좋아하는걸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 쏟으리라.
아이의 긴장감을 완화시켜주고 정서를 편안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네이버에서 어떤 사람의 글을 봤는데 아이가 오면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아이랑만 시간을 보냈고 아이가 좋아졌다 했다. 내 짜증을 줄이고 많은 야외활동과 함께 아이가 있을때 핸드폰은 최대한 멀리하기로 했다. 오롯이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상담을 받아볼까 했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유튜브 채널 업로드에 대한 부담도 내려놓았다.
같이 그림도 자주 그렸다. 놀이터도 훨씬 자주 가고 물놀이도 갔다. 시골에도 자주 갔다. 실컷 놀도록.
교회에서 아이가 원치않는 "성가대 참여"는 안하도록 했다. 방학중 방과후도 다 결석시키고 놀렸다.
원하는 책은 잔뜩 사 주었다. 너무 많은 방과후도 2학기부터는 다이어트 해 꼭 하고싶다는 큐브만 하도록 했다.
아이 하교시에도 불안감이 없게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도록 딱 맞춰 갔다. 여전히 증상은 심했지만 대수롭지 않은듯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나는 8월 말 부터 아파트 단지에서 거의 매일같이 친한 반 친구랑 실컷 놀수 있게 해주었다.
9월 초, 아이의 눈 깜빡임이 현저히 줄었고 머리흔드는 증상만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 갑자기 아이가 그런다.
"엄마 저 이제 머리 안 흔들어요."
진짜?????
"네, 안 흔들려고 해요. 안 불편해요"
그 이야기하고 딱 한번 흔드는걸 목격했고,
6일동안 아이는 단 한번도 틱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할렐루야!
더불어, 작년 겨울부터 생겨나 셋째의 몸과 얼굴, 손에 잔뜩 분포하던 사마귀들도 모조리 한순간에 사라졌다.
내가 한 건 기도 뿐이었다.
어찌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수 있을까!
주안이는 나의 첫째고
다 클 때까지 처음이다.
초등학생 엄마가 되는것도 이 아이가 처음,
중학생 엄마가 되는것도 이 아이가 처음.
나는 이 아이를 통해 이렇게 서서히 엄마가 되어간다.